요즘 전시회와 세미나를 다니다 보면 눈부신 기술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AI, 드론, 자율주행, XR… 미래를 앞당길 것 같은 솔루션들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그 빛나는 무대 뒤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자주 빠집니다. “지금, 현장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기술은 멋짐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해답이어야 합니다. 정책 결정자는 새로운 성과를 원하고, 기업은 기술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사용자는 편리함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현장의 실제 문제’가 종종 잊힙니다. 기술이 현장을 외면하는 순간, 혁신은 공허해집니다.
속도보다 방향, 기술보다 가치.
국가와 공공기관의 기술 투자는 ‘새로운 것’보다 ‘필요한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화려한 시연보다 실질적 효용,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중심에 놓을 때 비로소 기술은 공공의 자산이 됩니다. 한 줄의 코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입니다.
기업의 역할도 분명합니다. 납품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설계하고 고치는 ‘공동 설계자(co-designer)’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현장의 피드백을 상시로 수집하고, 작은 불편부터 해소하는 과정이 쌓일 때 기술은 뿌리내립니다. “이건 진짜 도움이 된다”는 현장의 한 마디가 최고의 성과입니다.
보여주는 기술보다, 작동하는 기술이 강하다.
사용자 또한 완벽한 기술만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고 기술과 함께 적응해야 합니다. 기술은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도와주는 동반자입니다. 그 동반자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고쳐가며 완성됩니다.
현장에서 특히 필요한 것은 ‘작고 실용적인 혁신’입니다. 복잡한 알고리즘보다 신속한 대응, 간편한 조작, 명확한 정보 전달이 때로는 생명을 구합니다. 노인 보행자를 감지해 신호를 조정하는 교통 시스템, 화재 현장에서 시야를 열어주는 드론, 현장 요원의 부담을 줄이는 간명한 앱—이런 기술이야말로 값진 미래입니다.
결국 기술의 진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국가, 기업, 사용자 모두가 동일한 방향—현장의 필요와 공동체의 가치—를 바라볼 때 기술은 사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기술이 사람을 향하는 순간, 그것은 발전을 넘어 성숙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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